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배문고등학교 야구부 (문단 편집) === 연이은 전국대회 준우승 === 그들의 아성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던 것은 1967년 [[청룡기]]때 였다. 에이스 이영배를 앞세워 [[인천고등학교 야구부|인천고]]를 격파한후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|경북고]]에 패배하며 패자조에 내려갔지만, 이성수와 [[백기성]]의 연이은 득점으로 [[경남고등학교 야구부|경남고]]를 격파하고 패자조 결승에 진출, [[성남고등학교 야구부|성남고]]를 8:4로 패퇴시키며 결승전에서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|경북고]]와 마주하게 되었다. 그러나 [[임신근]]을 앞세운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|경북고]]에 5:2 패배를 기록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. 그리고 1968년 배문고는 [[백기성]][* 당시 유격수. 이후 프로야구 코치를 지냈다.]을 앞세워 [[대통령배]]에서 [[부산고등학교 야구부|부산고]]와 [[선린상고 야구부|선린상고]]를 연달아 격파하며 결승전에 올랐는데, 이때 결승전에서 기다리던 상대는 청룡기에서 자신들을 가로막은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|경북고]]였다. 그러나 에이스 [[임신근]]이 버틴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|경북고]]는 막강했고 배문고의 선발투수 김종인과, 이어서 마운드에 올라온 이영배, 차경환, 박찬영이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|경북고]]의 강타선을 제대로 막지 못하며 6:1로 패배, 또다시 우승컵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. 1969년에는 [[황금사자기]] 4강에 진출 했지만 [[선린상고 야구부|선린상고]]에게 패배하며 패자조로 진출, [[경남고등학교 야구부|경남고]]를 꺾었으나 패자조 결승에서 경북고에 패배한 선린상고에게 패배하며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. 1970년 8강에서 [[개성고등학교 야구부|부산상고]]를 13:3으로 격파, 패자조 준결승에서 [[부명고등학교|부명고]]를 5:2로 격파후 패자조 결승에서 [[부산고등학교 야구부|부산고등학교]]를 격파하고 [[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|대구상고]]와 결승에서 맞부딪혔다. [[동대문운동장]]에 무려 3만명이 달하는 관중이 모였고, 6월 16일에 펼쳐진 경기에서는 백창현의 역투로 [[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|대구상고]]를 꽁꽁 묶었고, [[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|대구상고]]도 에이스 정기혁의 호투가 이어지며 3시간 동안 13회까지 0:0 무승부를 기록, 6월 17일 재경기가 열렸다. 또다시 양 에이스들이 등판한 가운데 4회까지 양팀다 호투를 펼쳤으나 배문고의 백창현이 5회말 [[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|대구상고]]의 황상전에게 일격을 맞았고, 6회초 에이스 백창현이 타석에서 안타를 뽑아내며 1:1 동점을 이뤄냈으나, 6회말 [[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|대구상고]]의 공격, 1사 만루의 위기에서 김영현의 기습 번트로 역전을 내주게 되었고 더이상 양 팀의 타자들이 점수를 내지 못하며 그대로 경기 종료. 1970년 불타는 여름이 그들 역사상 가장 우승에 근접했던 날이었고 이날은 그들의 마지막 결승전이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